2022년 7월 31일 설교요약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2-08-06 13:43     조회 : 64    
▣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 베드로전서 1:3-9 (220731. 주일예배) ▣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이 서신을 구원의 은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많은 긍휼을 따라 우리로 하여금 중생하게 하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하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소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데, 지난주는 바로 이 시점에서, 그러니까 소망의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한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현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미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원 받아 그 은혜로 산다고 하는 우리가 각자 붙들고 있고 또 취하려고 하는 게 나름대로 분명히 있다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거듭나게 하사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응당 이런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지금 그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듯이 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무슨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고 하니,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말씀이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 아들을 우리의 죄 값으로 죽게 하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이잖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 단지 소망이 있게 하는 것으로 그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죽지 않는 산 소망이라 하더라도 단지 그 소망이 있게 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소망이든 산 소망이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으로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보편적인 견해요 입장이지 않나싶은 겁니다.

이와 같이 본문 말씀과 우리의 현실과는 큰 격차가 있다, 결코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구원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거듭나는 은혜를 입었고 그로 인해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 말씀을 과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신앙은 우리에게 있는 ‘산 소망’을 보여주는 생활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소망 자체를 뿌리부터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행하는 목적지, 곧 표적지가 본문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주제를 놓고 질문을 드려보자면, 우리가 평소 지니고 있는 소망의 목적지, 그 표적지가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을 향한 중심으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까? 이대로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매일의 삶을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