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4일 설교요약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2-07-30 13:40     조회 : 107    
▣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3) / 베드로전서 1:3-9 (220724. 주일예배) ▣

하나님께서 미리 우리를 아시고 구별하사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죄 사함 받게 하시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순종케 하신 은혜가, 우리 믿는 자에게 가장 소중한 구원의 은혜가 신자로 하여금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어울려 살지 못하고 낯선 자가 되어 나그네처럼 살아가게 한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으로 베드로전서는 시작됩니다. 이어서 베드로 사도는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많은 긍휼을 따라 우리로 하여금 중생하게 하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중생은 분명히 성령님의 주권적이며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실현되는 것이 사실이나 중생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그가 우리 죄인을 위하여 이루신 구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토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시작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이 죽고 그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사는 이 은혜를 받아 누리는 형식은 오직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주권적이고 신비한 중생의 역사는 우리의 믿음과 함께 가는 것이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중생은 특별한 몇몇 사람만 경험하는 특수한 제한적 경험이 아니요 십자가의 은혜나 그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게 경험하는 고립된 경험도 아니요 모든 신자가 경험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구원 경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중생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그리 깊지 않으며 때로는 오해가 적지 않게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흔히 중생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비상한 은혜요 나와는 거리가 먼 일로 생각하고서 그저 아쉽고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만 있거나 아니면 열심히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구하지만 그 자세가 건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중생을 흔히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동반한 강력한 폭풍과 같은 것으로, 말하자면 급격하고 극적인 변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중생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바람에 비유하셨을 뿐이지 그것이 폭풍 같은 강풍인지 온화한 미풍일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요 3장). 중요한 것은 중생 자체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난 내적 변화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서 난 자요 그에게 속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요 새 생명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요 그 결과 내 안팎에서 중생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런 중생의 은혜를 베풀어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사도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목적을 이렇게 밝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