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설교요약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3-12-09 13:49     조회 : 745    
▣ 영생을 누리는 관계의 열매 (3) / 요한일서 1:1-4 (231203. 주일예배)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그의 평생을 걸쳐 ‘영생을 누리는 관계의 열매’가 열리는데, 이는 다름 아닌 ‘영생의 소망’이 그 영생을 누리는 ‘관계의 열매’로 결실을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결국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서도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함으로써, 영생의 소망은 그 영생을 누리는 관계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관계를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본문 3, 4절에는 사도가 요한일서 서신을 보낸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서신을 읽을 독자들로 하여금 요한 사도 일행이 먼저 소유하고 있던 신앙의 거대한 유익 가운데 함께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귀는 사귐을 저들도 동일하게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점은 요한 사도가 기록한 복음서의 기록목적과 분명히 대조되는 것인데, 요한복음은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요한일서는 믿음 있는 자들에게 더 큰 확신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 확신을 갖는 길이 바로 사귐입니다. 사귐이 있느냐 없느냐로 우리는 큰 확신 가운데 거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귐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이 사귐이라는 말은 ‘동료, 참여자’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로 ‘교제하는 것, 하나 됨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완전히 하나로 동화되는 관계가 사귐입니다. 또한 이 사귐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귐이란 둘이 하나되는 관계요, 기꺼이 둘이 함께 나누는 사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친교, 곧 친밀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이 사귐을 요한 사도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일행이 먼저 믿은 자로써 소유하고 있는 이 사귐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연합하며 그와 모든 것을 나누는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귀한 사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일은 죄인 된 사람들로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위상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몸과 같은 육신을 입고 내려오게 하시사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자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망각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마다하고 죄에 빠져 마귀와 교제하며 지내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그 사귐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영생을 누리는 관계의 열매’는 이렇게 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