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 골로새서 2:18-19 (210207. 주일예배) ▣
사도는 지금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는 참 신앙을 위협하는 교묘한 이단을 경계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바울이 최우선적으로 꼽은 것은, 자아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는 사람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믿음이 토대가 되지 않는 가치관과 믿음이 반영되지 않는 육신적인 생각을 진리와 은혜보다 우위에 두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신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버리고 믿음이라는 새로운 본성과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모든 만물을 분별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을 거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부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요 또 위험요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 외에도 훨씬 종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참 신앙인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외면하는 경향(傾向)이 교회 내에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율법주의나 이제 살펴볼 신비주의, 그리고 금욕주의 등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종교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조금 열심 있다 하는 사람들이 이 이단에 많이 걸려 넘어 집니다. 율법주의는 지난주에 살펴 본 대로, 그림자를 몸으로 여기거나 몸보다 그림자를 더 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보다 의식 자체를 중히 여기거나 거기에 어떤 의미를 두는 것은 불신앙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보신 구절은 신비주의를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조금 열심을 낸다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환상과 그밖에 신비 체험을 통해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들과 교통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높고, 더 깊고, 더 충만하게 누리게 한다고 현혹(眩惑)시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경계를 시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은 골로새 교회의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비밀스런 환상을 보거나 어떤 특별한 체험이 없는 사람은 참된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며 은근히 일반 신자들을 깔본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겉으로 보면 아주 겸손한 자세로 다가와서 무언가를 얘기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무시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꾸며낸 겸손’이라는 말이 그 뜻입니다. 겸손한 체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런 사람들의 외모나 또 그들이 내리는 평가에 대해 주눅 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영적 차원에서의 열등감에 빠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사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여기에 신비주의자들의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는 저들은 그 본 것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본 것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나 그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나 말씀을 따르는 순종보다 자기 체험을 더 크게 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생들은 말씀을 일상적으로 배우고 가까이 하는 것보다는 환상이나 신유, 방언이나 신비체험, 이런 것들을 더 우위에 두고, 그것들을 더 깊은 신앙의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성경 곧 진리의 말씀이 신앙의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채워준다는 이 은혜로운 사실보다,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저들의 체험이 실제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보았다거나 체험했다고 말하는 자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거짓 선생들은 놀라운 이적이나 은사체험을 했습니다. 본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것을 의지하는 것이 불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어디에서도 신비적 체험을 경험하라고 권한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자신은 어떤 사람보다 은사도 많이 받고, 부활하신 주님을 빛 가운데서 만나 뵙는 체험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셋째 하늘이라는 곳에도 올라갔다 오기도 한 경험을 했던 자였으나, 어디에서도 ‘체험을 사모하라, 신비한 일을 추구하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말씀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두 번째 특징은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한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자들은 자기가 경함한 것을 필요이상으로 크게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은, 본성적으로 악한 마음의 성향이 발동된다는 말입니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체험, 일반적으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은 금새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너희가 받지 못한 이런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우쭐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것이 특별히 나쁜 일을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즉 교회에서 있을 수 있는 신비한 일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그걸 빌미로 자기를 자랑하려는 욕구를 발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신비를 추구하는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비주의의 가장 큰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일을 경험하는 것에서 신앙의 활력을 찾게 되면, 으레 놀라운 일 자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들으며 순종하는 것은 시시한 신앙으로 여기게 되며,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힘 있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초점을 예수님과의 마음의 교통이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라는 일상의 삶에 두지 않고 신비할 일 자체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 그런 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비주의나 율법주의 등 나름대로 종교적인 것 같은 일에 뜨거운 열심을 부리나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헛된 종교인들이 많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저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요? 그리스도는 몸 된 교회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책임지시는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바울은 본문에서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고 설명합니다. 성도가 생명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구원의 영광에 이르는 것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을 때뿐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머리에 연결되어 있어야 머리로부터 제공되는 능력과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역사를 따라 신령한 자로 장성해 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주의는 그 머리를 체험과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는 놀라운 일을 그리스도보다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체험과 은사 받는 것을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맞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체험을 바꾼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오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간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신비주의자들의 무서움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근본을, 그 기초를 다 무시한다는 뜻입니다. 신비주의는 이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일어난 일과 유사한 일을 추구하며 경험하는 것이 그렇게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그것은 실상 자기는 머리 없는 몸만 있으면 되고 그 상태로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설 수 있다고 나서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비주의는 평범한 것을 배척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具現)하는 것을 별 볼일 없는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일상 곧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기 위해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애쓰는 것입니다. 어떤 놀라운 일, 신비한 체험, 더 크고 많은 일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평범한 일상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과 거룩을 이루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지루한 일, 곧 잊혀 질 일, 아무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상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하나님을 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앙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날마다 말씀을 받아서 깨우쳐야 하고, 그리고 깨우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그 안에서 그의 능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만으로는 신앙생활이나 인생에 필요한 측면에서 불충분하다는 생각은 이단적인 불신앙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무언가를 덧붙여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여러분도 주님 오실 때까지 말씀에만 전념하십시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가장 귀히 여기시고, 크고 특별한 무엇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평범한 일상에서 주님을 특별히 섬기는 삶이 가장 위대한 삶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시기 바라고,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그럴 듯한 이단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러분을 경계시키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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