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라 / 베드로전서 4:7-8 (230903. 주일예배) ▣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일단 인간으로 태어난 자들을 전부 심판하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말하자면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최후의 심판이 시행될 수 있는 긴장된 순간에 서 있음을 알리는 말에 이어서, 오늘 말씀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런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천지만물과 그 역사를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마감할 순간이 이미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만물의 마지막이 이미 임한 시기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사려와 분별이 요구될 것이며 이것저것에 끌려 다니며 균형과 방향을 잃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것이 참으로 요긴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베드로전서의 이 권면은 간결하면서도 독특한 내용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목적이 바로 기도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사려와 분별로 신중하며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을 절제해야 하는 이유가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이미 시작된 시대를 사는 신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이 기도라, 기도 없이는 신자로서 사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믿는 자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험악하고 어려운 일인지 알리는 말씀이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만 소망을 두며 모든 사정을 아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 곧 그의 능력과 은혜로만 감당할 수 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에 이어 “뜨겁게,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라는 말씀과 기도하라는 말씀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려운지라 두 권면을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오히려 기도하라는 권면을 바탕으로 하고서 사랑하라고 권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사려 분별로 신중하며 자신을 절제하는 가운데 험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고자 끊임없이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고 도움을 구하며 그가 베푸시는 힘과 은혜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더불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니 여기에는 어떤 악하고 부끄럽고 거짓된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의 고귀함만 풍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는데, 사랑에 대하여 설명한 이 말씀은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랑이 잘못을 눈감아 덮어주고 아무것도 아닌 양 지나치는 것이라는 그런 생각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신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만큼 이런 뜻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연약한 형제를 사랑한 것이 온갖 죄를 다 덮어 범죄 한 자로 하여금 회개와 믿음과 은혜에 이르게 하는 일, 그에게 드리웠던 죄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게 하는 은혜로운 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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