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 설교요약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3-04-23 07:02     조회 : 1479    
▣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3) / 베드로전서 2:10-12 (230416. 주일예배) ▣

오늘은 한 성도의 고백을 전해드립니다. 요즘 나누고 있는 말씀과 관련해서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공개할 결정을 내리고 본인의 양해를 구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면 믿음이 생기고 자라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 줄 알고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다가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를 받으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열심히 교회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이 참 불행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인데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심적으로는 말씀을 깨닫기 전이 더 편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신앙생활이 그 때가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 한 성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전에는 말씀보다는 자신의 봉사와 섬김이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었었지만, 이제는 우선적으로 믿음 자체가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자신이 힘을 다해 교회를 섬기면 믿음이 생기고 자라나는 줄 알았다가, 이제는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갖게 해 주시는 믿음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 것입니다.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게 되면서 말씀에서 멀리 있는 자신을 보게 되니까 힘들어진 겁니다. 그러니 말씀과는 별 상관없이 자신의 열심이면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여겼던 때가 더 편했다는 생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본문과 연결시켜 보면, 전에는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과 별 상관 않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는 말씀과도 별 상관없이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말씀이 믿음과 삶의 중심이 아니었으니까 얼마든지 그냥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항상 관건은 내가 열심히 하느냐 아니냐에 있으니까, 열쇠는 나에게 있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고, 이런 점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지금보다 마음이 더 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내용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결정적인 요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이냐 아니냐?’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열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순종이요 사랑으로 인한 열심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열심으로 은혜를 받겠다는 식이었으니 말씀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신 그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말씀에서 난 믿음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그래서 그 사랑 안에서 순종하려고 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물론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라’는 말씀 앞에서 이전보다 더 힘들고 더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주님과 동행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실제의 영적 훈련을 감당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거듭난 성도로서 자라가는 과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