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4일 설교요약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4-02-10 15:21     조회 : 1046    
▣ 아이들과 아비들 / 요한일서 2:12-14 (240204. 주일예배) ▣

요한 사도는 앞에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진술해 왔습니다. 죄를 처리하고 거룩한 자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이요, 그 계명의 본질은 형제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고맙고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숨거나 불만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걸 누가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이런 속성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우리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는 우리 신자들의 확신을 강화시켜서 그리스도와의 사귐의 자리에 더욱 기꺼이 나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이라는 연령층은 나이와 관계된 것보다는 영적 성숙도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비교적 초신자들을 가리켜 ‘자녀들’이라 하고, 어느 정도 영적 성숙을 이룬 신자들을 ‘아비들’이라 부르며, 한창 성숙을 위해 애쓰고 있는 성도들을 청년기의 활동력에 비유해서 ‘청년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자녀 된 자들에게 주는 요한의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주님과의 사귐에 나서는 길은 먼저 죄 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굳게 믿음으로써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형제사랑의 계명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모든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와 부족함을 다 용서받았다는 그 믿음에서만 사귐으로 나아가는 담대함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자신의 죄가 사해졌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게 되어 있다는 점을 사도는 알려 줍니다. 전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려워하기만 하던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순종과 연약함이 여전히 자기에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전과는 다른 분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완벽하게 계명을 순종할 때까지 이 사귐을 미루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우선, 아비들이라는 호칭은, 이들이 바람직한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더 이상 자기 스스로 완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기반삼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입니다. 그래서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은혜를 입었다고 한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란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과 연합한 존재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그와 동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성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아비들’이라고 부른 것은 모든 영적 자녀들은 이 아비들처럼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사귀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미 교회에서 영적 아비들이라 불리는 자들에게도 더욱 깊은 사귐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만큼 더 깊이 사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어떤 외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에 있지 않음을 여기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끊임없는 사귐의 관계입니다.